영어로 일기 쓰면 영어가 뚫린다

몇년 전 얘기다. 강의를 막 끝내고 쉬고 있는데 3개월이 넘게 수강중인 주부 한 분이 상담하러 왔다.

상담의 내용인 즉, "지난 봄에 아들을 영국으로 유학 보냈는데, 처음에 아이를 데리고 갔을 때 말이 안 통해 겪은 고생도 그렇고, 또 앞으로도 자주 아들 만나러 영국에 가려면 필수적이라고 생각해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처음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실력이 늘었지만, 문제는 영어로 말할 때, 즐겨 쓰는 몇 가지 표현만 반복해서 쓸 뿐, 그 범위를 벗어나면 도무지 자신이 없고 응용력이 생기지 않는다" 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간단한 테스트를 해 보니 문법자동화도 꽤 기초가 잡혀 있고, 발음과 리듬도 그런 대로 쓸 만한 상태이나, 그것들을 자유롭게 응용하는 연습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나는 특별 처방으로 '영어로 일기 쓰기'를 추천했다.

"아니, 제가 감히 영어로 일기를 쓰다니요" 하며 엄두도 못 내는 부인을 격려해 가며, 약 30분간 영어로 일기 쓰는 방법을 지도해서 돌려보냈는데, 바로 그 다음 날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쉬는 시간에, P부인이 상기한 얼굴로 강사실에 달려와서는 "선생님, 이게 제가 어제 쓴 일기예요" 하면서 노트 한 권을 불쑥 내미는데 보니까, 대학노트에 깨알 같은 글씨로 무려 다섯 페이지나 되는 일기가 '영어로' 쓰여 있는 게 아닌가!

자세히 읽어보니 "I got up at six this morning and woke up my husband and my son. I cook breakfast and fed my husband and my son. After I finished washing the house. I went Jung Chul School. I studied very hard. It is fun. I had lunch with my classmates. We ate ppizza. It is deicious."이런 식으로 군데 군데 어색한 곳과 틀린 곳은 좀 있지만 그런 대로 뜻은 통하는 영어였다. 얼마나 기특한 일인가!

P부인 하는 말이 "저도 놀랐어요 처음에는 '내가 과연 영어로 글을 쓸 수가 있을까' 하고 반신반의했는데 일단 쓰기 시작하니까, 학원에서 연습한 것들이 하나하나 되살아나며 마치 누에고치에서 실이 뽑혀 나오듯 술술 나왔어요. 막힐 때마다 학원교재를 뒤지며 쓰다 보니 새벽 2시까지 일기를 썼지 뭐예요. 어젯밤에는 너무 기뻐 거의 한숨도 못 잤어요. 아니 '이거 정말 당신이 쓴 거야' '정말 엄마가 쓴거야' 하며 놀라지 뭐예요" 라며 너무 재미있고 자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때는 이때다" 하고 사정없이 칭찬과 격려를 해주었다.

"당신은 영어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 혹시 전생에 영국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더 하면 영국 학교의 학부모회의에도 참석할 수 있겠다. 영어로 일기 쓰기를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하라…" 그랬더니….
이렇게 영어일기 쓰기에 자신감을 얻은 P부인은 영어공부에 본격적인 불이 붙었다. 이후 P부인의 둘째아들은 물론, 남편까지도 ‘영어일기 쓰기’를 시작했고, 나중에는 강남에 사는 P부인의 일가친척 모두 열렬한 ‘영어일기 쓰기 가족’이 되어 식구들끼리도 영어로 e-메일을 주고받는 정도가 되었다.

당연히 학생들은 학교성적도 올라가고, 토익 점수도 쑥쑥 올라갔으며, 회화도 나날이 유창해진다고 좋아했다. P부인의 사례는 20여 년간 영어선생을 하며 겪은 수많은 일화 중 하나일 뿐, 영어일기 쓰기를 추천해서 성공한 사람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면 영어일기 쓰기가 좋은 점 몇 가지를 정리해 보자.

첫째-훌륭한 복습 방법이 된다.

‘영어일기 쓰기’는 특히 날마다 학교나 학원 등에 다니며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 아주 훌륭한 ‘학습 강화’수단이 된다. 학원 등에 다니다 보면 대부분 겪는 일이지만, 날마다 선생님은 “집에 가서 복습 좀 해오세요” 하고, 자신도 “꼭 복습을 해야지” 하면서도 꼬박꼬박 못해서 죄의식만 쌓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영어일기를 날마다 쓰다 보면 얼마 전에 배운 것 같은데 잘 생각나지 않는 대목을 수도 없이 만나게 되고, 그때마다 자연히 교과서나 노트를 뒤져가며 복습을 한다. 그러다 보면 그것들이 머릿속에 ‘기억 파일’로 단단히 자리잡아 절대 잊히지 않는다.

둘째-강한 학습동기가 생긴다.

날마다 영어일기를 쓰다 보면 처음에는 그저 아침에 일어나고, 밥 먹고, 출근하고, 학교 가는 등의 평범한 일상사 얘기가 주를 이루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그런 간단한 말들에 싫증을 일으킨다. 자연히 남북관계에 관한 얘기라든가, 월드컵 축구 얘기라든가, 박세리 골프 얘기 같은 좀더 내용 있는 얘기를 쓰는 것에 도전하고 싶어진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사전을 뒤지고, 영자 신문의 관련기사를 읽어본다든가 하면서 영어공부에 빠지는 것이다.

셋째-만나는 영어 문장들을 유심히 본다.

보통 때는 교재의 예문이나 영자신문 기사 등을 그냥 대충 이해만 하고 지나치지만, 영어일기를 쓰면 “아! 이런 말을 이렇게 표현하는구나” “이건 외우면 나중에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겠는데” 하면서 유심히 살피고 메모해서 외운다.

넷째-한 번 써본 것은 잘 잊어버리지 않는다.

교재 등에 나와 있는 표현이나 문장들은 열심히 공부해도 얼마 지나면 잊어버리기 일쑤지만, 자신이 고생고생하며 뒤지고, 찾고, 꿰어맞추고 해서 직접 써본 표현들은 좀처럼 잊어버리지 않는다.


이번에는 영어로 일기 쓰는 요령에 대해 정리해 보자.

첫째, 지금 당장 쓰기 시작한다.

영어일기 쓰기를 추천한 후 일주일쯤 뒤에 물어보면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아직, 일기장을 못 사서…”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영어공부를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아무 공책에나, 아무 종이 위에나 무조건 지금 당장 쓰기 시작한다.

둘째, 날마다 써라. ‘영어일기 쓰기’는 매일같이 해서 나중에는 습관이 되어야 한다.
직장인의 경우 일기뿐 아니라 업무 메모까지 영어로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그래야 머릿속의 기억 파일의 활동성이 좋아져, 영어로 듣거나 말할 때 머뭇거림 없이 즉각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셋째, 욕심을 버리고 쉬운 내용을 쓴다.
처음 시작할 때는 아침에 일어난 시간, 그 다음에 한 일, 날씨, 만난 사람, 한 얘기, 간 곳, 거기서 본 것, 들은 것… 등 아주 쉬운 것부터 쓰는 것이 좋다. 괜히 처음부터 거창한 주제로 씨름하다가는 첫 줄부터 기가 죽어 얼마 못 가서 포기하고 만다.

넷째, 긴 문장은 짧게 끊어 쓴다.
처음 영어일기를 쓸 때는 접속사, 관계대명사, 명사절 등이 들어가는 복잡한 문장은 가급적 피하고, 긴 내용은 여러 개의 짧은 단문으로 끊어 쓰는 것이 쉽고 재미있다.

예를 들어 “박세리가 미국에 건너간 지 1년 반 만에 21세의 어린 나이로 메이저 대회 2개를 포함한 4개의 시합에서 우승한 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는 말을 쓰고 싶으면 이것을 한 문장으로 쓰려고 쩔쩔맬 일이 아니라, “박세리가 10개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것은 2개의 메이저를 포함한 것이다./ 미국에 건너간 지 4년 반 만이다./ 그녀는 24세의 어린 나이다./ 참으로 대단하다./ 그녀가 자랑스럽다.” 이렇게 짧고 쉬운 문장들로 끊어 쓰면 된다.

영어로 써보면, “Pak Seri has won 10 championships. This includes 2 major games. It is four and a half years since she went to America. She is only 24 years old. She is so great. I’m very proud of her.” 가 된다.

어떤가. 처음에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심란스럽기만 하던 문장이 6개의 짧은 문장으로 끊어놓으니까 의외로 간단히 처리되지 않는가. 좀 어색하고 서투른 냄새가 나긴 하지만,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쉽게 쓰는 것이 부담이 없어서 좋다.

영어로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멋지게 말하려 욕심내지 않고, 이렇게 짧게 끊어 말하기 시작하면 못할 말이 없다.

또 이런 식으로 날마다 일기를 쓰다 보면 “이번에는 분사구문을 써볼까?” “관계대명사를 한 번 써볼까?” “강조구문을 써보면 어떨까?” 하면서 점차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문장을 쓸 수 있게 된다. 

< 정철/정철언어연구소 소장 >